일의 기쁨과 슬픔
작가 장류진, 86년생.
어리다. 젊다.(나이 인증?) 젊은 작가다. 요 근래 소설을 잘 안 읽는 편인데 회사 팀원이 재밌다고 해서 읽게 된 책이다. 책 제목은 소설집에 대표작이고, 작가의 여러 단편을 모은 책이다. 그래도 창비에서 나왔으니 그 기본적인 수준은 처음부터 인정하고 보는 책이다.
나에게 젊은 작가란 어떤 작가일까?
내가 20대대 읽었던 30대 소설가들이 그랬다. 지금은 너무 유명한 한강, 김영하, 배수아 좀 더 들어가면 김형경이나 은희경은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세대의 작가였다. 그래도 그들도 그때는 젊은 작가였다. 40대였으니까... 이 책의 저자 장류진도 2021년 현재 기준으로는 젊은 작가다. 30대 중반.
책은 총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1. 잘 살겠습니다. : 회사 동기와 결혼 청첩장과 축의금에 얽힌 에피소드를 현실감있게 잘 푼 것 같다. 요즘 결혼하는 MZ세대들은 더 칼 같이 계산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도 요즘 그 세대같이 칼같이 계산하는 버릇이 생겼다.
2. 일의 기쁨과 슬픔 : 당근마켓과 비슷한 중고 플랫폼 우동마켓이라는 앱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에 근무하는 직원과 같은 판교에 근무하는 우동마켓의 우수(?) 고객이 엮인 에피소드이다. 스타트업과 요즘 판교 직장인들의 라이프스타일도 약간 엿볼 수 있다. 월급쟁이의 삶은 어디서나 언제나 비슷한 풍경이다. 주인공의 낙은 클래식 공연을 광클해서 예매하고 보는 것. 조성진의 팬으로 설정된 부분은 흥미로웠다.
3.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 이 소설집에서 가장 재미있던 단편이다. 30대중반의 남성의 심리를 꽤 잘 꿰뚫어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한 기대감과 반전.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는 나에게는 묘한 단편이다.
4. 다소낮음 : 음반을 냈지만 거의 무명인 밴드 가수와 팬심으로 다가가 연인이 되어 동거생활을 하는 여친의 이야기를 오래된 냉장고를 소재로 해서 풀어낸 이야기다. 아티스트로서의 아직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주인공의 이야기, 냉장고의 에너지 소비효율등급이 4등급, 다소 낮음은 냉장고 주인인 주인공 장우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년에 무명(?) 밴드의 기타리스트와 결혼한 조카가 많이 떠올랐다. 2세까지 지금 임신 중인데 그래도 우리 조카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5. 도움의 손길 : 맞벌이 부부가 어렵게 장만한 자기집에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는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묘하게 그녀의 성격이 아내의 성격과 닮아 있었다. 아내는 그런 도우미 아주머니를 쓸 성격도 아니지만 우리도 맞벌이였으면, 합리적인 대안으로 가사도우미를 썼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고용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 내 맘 같지 않다가 여실히 드러난다.
6.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 : 여기 실린 단편 중에 가장 짧은 단편이다. 이렇게 끝?이라고 생각할 때 끝나는... 출근길 짧은 시간 동안의 주인공의 여러 심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끝이 난다. 이 시대에 공채 정규직이 된다는 기대심리, 결국 월급쟁이의 삶이지만 적금을 들어 이탈리아 여행을 꿈꾸는 우리 시대의 우리의 삶이 그대로 보인다.
7. 새벽의 방문자들 : 오피스텔에서 사는 1인 여성의 현실을 보여준다. 오피걸을 찾는 남성들이 잘못된 호실로 찾아온다는 설정으로 처음엔 공포스러웠던 새벽의 방문자들이 나중엔 주인공의 관찰의 대상이 되어 빈집에 사진으로 남는 설정. 이 또한 이 시대의 직장인의 삶을 여성의 시선을 통해 방문자 남성의 직장인들을 관찰하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8. 탐페레 공항 : 핀란드에 있는 지명 '탐페레' 처음 듣는 장소라서 제목도 낯설었따. 아일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주인공이 싼 항공편의 환승을 하던 장소로 들렸던 탐페레 공항에서 만난 나이 든(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노인과의 만남의 에피소드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한국에 돌아와 취업을 위해 각박한 생활을 하다가 잊었던 그 기억의 그 노인에게 전화통화를 해서 그 부인과 통화하면서 끝난다. 묘한 감동을 준 단편이다.
8편의 단편들의 공통점은 작가가 회사생활(10년동안했다고 한다)을 하는 동안 썼던 이야기라고 한다. 그래서 모두 직장인, 소위 말하는 월급쟁이의 이야기들이 잘 담겨있다. 그래서 이 소설집의 대표 제목이 일의 기쁨과 슬픔일지도 모른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인아영 평론가의 해설이 있다.
그중에 한대목
그런데 여기에는 한국문학이 오랫동안 수호해왔던 내면의 진정성이나 비대한 자아가 없다. 깊은 우울과 서정이 있었던 자리에는 대신 정확하고 객관적인 자기 인식, 신속하고 경쾌한 실천, 삶의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 있다.
장류진 작가의 작품의 속성을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노동과 일상의 경계를 명민하게 알고, 일의 기쁨과 슬픔을 조화롭게 이해하는 이 시대 가장 보통이 우리들이다.' 이게 바로 장류진 이야기에 나온 모습이다.
우리들... 이야기...
젊은 작가의 트랜디한 소설을 읽으니 기분이 좋다. 앞으로도 기대가 된다. 다른 젊은 작가들의 소설도 좀 읽어봐야겠다. 박상영이라던가. 송지현이라던가...
책정보
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Author : 장류진 지음
Publisher : 창비
Format : 236 pages
ISBN : 9788936438036
장류진 작가 소개 기사 : 이토록 산뜻한 일의 슬픔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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